Thursday, April 23, 2009

탐나는 아이템 하나



Dunlop Aerogel 4D 5 Fifty Lite Racquets


던롭에서 새로나온 놈. 아주 미끈하게 잘 빠졌다.
무게도 가볍고(줄을 매고도 무게가 9.4oz 정도밖에 안되네),
기럭지도 27.25 inch로 보통 놈들보다 조금 길게 나왔다.
전체 무게는 가볍지만 무게 중심을 헤드쪽으로 살짝 옮겨놓아
묵직하고 쏠리드한 느낌을 주며
스윙할때 공에 실리는 파워를 잃지 않게 디자인 했다고 한다.

헤드 싸이즈도 100 sq inch로 mid-plus 사이즈다.
이정도면 초보자도 충분히 다룰수 있는 스펙이다.

주로 베이스 라인에서 인사이드 아웃 포핸드를 주무기로 하는 나의 플레이 스타일에 딱 맞는 놈이 아닐까... 싶은데.

매우 탐나는 놈이다. 눈 딱! 감고 화~악 득템해 버릴까??


Monday, April 20, 2009

Johannes Kepler and the New Astronomy (...continued)

케플러가 어린시절을 보냈던 Leonberg 도시의 현재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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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bald는 권위적인 가장이었고, 어린 케플러가 가질 수 있는 아버지 상에 가장 가까운 인물이었다. 케플러 가문의 기나긴 몰락의 과정은 Sebal의 네 번째 아들이었던 케플러의 아버지 Heinrich에 왔을 때 가장 최악의 상황을 맞았다. 그는 무자비했고, 교육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으며 케플러가 어린시절이었을 때 대부분의 시간을 집을 떠나 있었다. 케플러는 나중에 아버지를 기억하면서 아버지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그는 집안에 있는 모든 것을 부숴버렸다. 그는 늘 잘못을 저지르는 사람이었으며, 성미가 급했으며, 다른 사람과 자주 다투었다...." 오랜 세대에 걸쳐 황제를 보필하는 일에서 케플러집안을 유난히 돋보이게 했던 기사도 정신이 케플러의 아버지 Heinrich에겐 너무 지나치게 넘쳤던 탓이었을까. Sebald의 좁은 집에서 네 아들들이 함께 달박거리며 사는 생활에 신물이난 Heinrich는 케플러가 만 세살이 되기 전에 자신만의 모험을 찾아, Holland에서 전투를 하는 용병이 되기 위하여 그의 가족을 떠나 버렸다. 이때부터 Heinrich가 먼길을 떠나고, 오랜 시간이 지나 다시 돌아오는 일들이 케플러의 어린 시절 내내 반복되었다. Heinrich는 집에 돌아오긴 했으나, 전장의 유혹이 다시금 그의 발길을 전쟁터로 쉽게 되돌려 버렸다. 그가 집에 머무를 때면, 집안 식구 모두가 힘들어 했다. 그는 정말로 고약한 성미를 지닌 사람이었다. 마침네, A.D. 1588년, 케플러가 만 열 여섯살이 되었을 때, Heinrich는 집을 떠나서 다시는 되돌아 오지 않았다. 항간에 떠도는 소문으로는 어느 전쟁터에서 Naple 왕국의 해군 장교가되어 전투를 치루고 집으로 돌아오는 도중 Augsburg에서 목숨을 잃었다고 하는데, 아무도 확실한 것을 아는 사람은 없었다.

케플러는 어린 시절 대부분을 그의 어머니, Katharina의 보살핌을 받고 자라났다. 어머니 Katharina는, 그 당시 장급 여관의 주인이면서, Eltingen 마을의 시장(mayor)이었던 Melchior Guldenmann의 딸이었다. 케플러는 여러가지면에서 Katharina를 닮았다. 케플러는 그녀와 같이, 작고, 마른 체구에 까무잡잡한 피부를 가지고 있었다. 그들 둘은 모두 끊임없이 무언가에 호기심을 가졌다. 케플러의 어머니는 정식 학교 교육을 받은 적은 없었으나 허브(herbs) 또는 집에서 만드는 향료(potions)가 갖는 치료 효과에 대해 상당히 많은 관심을 갖고 있었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 당시에 이러한 것들에 대한 지나친 관심은 자칫 운이 없다가는 그녀를 마녀 사냥 법정에 서게 할 수 도 있었던 일이었다. Katharina Kepler 역시 보통의 사람들이 싫어하는 이상하고도 불쾌한 느낌을 주는 그런 종류의 사람이었던 것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케플러 스스로도 자기의 어머니에 대하여 "말을 험하게 하고, 자주 다투며, 나쁜 영(bad spirit)에 사로잡혀있는" 사람으로 묘사했다. 무자비한 아버지와 이상한 성격을 소유한 어머니, 두 사람 사이의 관계는 늘 폭발 일보직전 처럼 불안했고, Heinrich가 전쟁터에서 돌아와 집에 있을 때면, 두 사람은 다른 사람들이 도저히 숨조차 쉬기 힘든 험악한 분위기를 만들어 냈다. 여러 해가 지난후 케플러가 점성술(astrology)의 원리를 이용하여 자신이 어머니에게 임신되었던 날을 계산하였는데, 그는 자신이 임신된 날짜가 A.D. 1571년 5월 17일 새벽 4시 37분이었다는 답에 도달했다. 아기였을때 그는 몸이 작고 늘 크고 작은 병에 시달려 왔었으므로, 케플러는 자신의 부모가 5월 15일에 결혼했었다는 사실을 강하게 부정하고, 자신이 실제로는 임신 7개월의 미숙아 상태로 태어났었을 것이라는 결론에 이른다. 계획되지 않은 임신으로 인한, 서둘러 이루어진 결혼. 이는 왜 케플러의 부모가 결혼생활 내내 불행한 관계속에 있을 수 밖에 없었는지를 잘 설명하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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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iday, April 17, 2009

The Triumph of Death (A.D. 1562, Peter Brugel)

유화로 그려진 이 음산하고도 기괴한 그림은 지난 글에 소개된 적이 있는 네덜란드 화가 피터 브뤼겔의 작품이다. 이 그림은 현재 스페인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에 전시되어 있다. 첫 눈에 들어오는 그림의 전체적인 분위기 속에서, 우리는 무언가 끔찍한 전쟁이 벌어지고 있음을 직감할 수 있다. 하지만, 그림의 부분 부분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그림을 클릭하면 확대된 이미지를 볼수 있다), 이는 전쟁이 아니라 거의 일방적인 거대한 학살이 벌어지고 있는 장면이라는 것을 알게된다.

그림 상단에서 하늘을 뒤덮고 있는 짙은 연기는 죽음의 군대에 의한 대량 학살이 비단 이 곳뿐만이 아니라 온 세상에 걸쳐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그리고 왼쪽 상단에 보이는 한 해골 군사는 죽음의 군대의 완전한 승리를 알리는 종을 울리고 있다. 그림 중앙에 보이는 수 많은 사람들은 죽음의 군대를 피하여 혼비백산하여 도망가고 있지만, 그 어디에도 그들의 목숨을 부지할 수 있는 안전한 곳을 찾을 수가 없다. 죽음의 군대는 이미 그 사람들을 위해서 거대한 관을 준비해 놓았다. 군대는 마치 토끼몰이를 하듯 사람들을 무자비하게 관속으로 몰아가고 있다.

그림의 왼쪽 아래 귀퉁이에 붉은 망토를 두르고, 빛나는 갑옷을 입은 사람이 보인다. 그의 옷차림으로 보아 그는 막강한 권력을 지닌, 고귀한 지위에 있는 사람임에 틀림없다. 죽음이 임박하기 전 그 사람은 어쩌면 온 천하를 호령하는 황제의 위치에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이제 삶에 대한 아무런 희망이 없이, 두 다리를 힘없이 쭉~뻗은체 자신의 죽음을 기다리고 있다. 그 어디에도 임박한 죽음에 대해 맞서려는 의지는 찾아 볼 수가 없다. 그림의 중앙 아랫쪽에는 그래도 몇 몇 용감한 기사들이 무시무시한 해골 군사들을 상대로 최후의 저항을 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의 뾰족한 칼과 창은 이 거대한 죽음의 흐름 앞에서 아무런 소용이 없어 보인다.

그림의 오른편 하단에 보이는 원형 식탁이 내 시선을 사로잡는다. 식탁 앞에서 자신의 칼을 막 뽑으려 하는 한 남자의 모습이 보인다. 죽음의 군대가 어찌나 갑작스럽게, 그리고 순식간에 이곳을 덮쳤는지, 이미 세상은 아비귀환이 되어있는데, 그는 이제서야 죽음의 엄습을 깨닫고 뒤늦게 자신의 칼을 뽑으려 하고 있다. 그리고... 그의 뒷편에는 지금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아는지 모르는지, 한 소년이 비파를 연주하며 아리따운 여인의 품에 안겨있다. 그들은 지금 행복해 보일지 모르지만, 그들에게 기다리고 있는 것은 끔찍한 죽음뿐이다.


이 그림이 그려질 당시 서부 유럽은 종교전쟁의 소용돌이 속에 있었다. 뿐만아니라 자신의 세력을 계속하여 확장하려는 강대국들과 그 속에서 독립을 지켜내려는 작은 나라들 사이의 전쟁 또한 끊이질 않았다. 화가는 이렇게 암울한 현실속에서 어떤 명분으로 전쟁이 시작되었던지, 또는 결과적으로 어느 한편이 승리를 하던지간에 결국 최후의 승리자는 "죽음"일 뿐이고, 우리 나약한 인간은 이러한 죽음의 무차별한 공격에 속절없이 굴복할 수 밖에 없는 패배자일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그리고 싶어했던게 아닐까...




Tuesday, April 14, 2009

Johannes Kepler and the New Astronomy

Johannes Kepler and
the New Astronomy
[번역]
by James R. Voelkel




"그의 주된 활동 영역과 연구 결과들이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매우 생소하고, 이해하기 힘든 것이지만, 정확성을 요구하는 자연 과학의 영역에서 자신의 천재성을 가지고 인류지식을 풍성하고 깊게 만들어준 사람들 가운데, 케플러 만큼이나 많은 이들의 동정을 받은 사람은 없었다. 그토록 많은 사람들의 깊은 관심을 불러 일으켰던 것은 다름 아닌 그의 아름다운 인격이었으리라. 그의 성품의 고결함은 그에게 많은 친구들을 만들어 주었고, 그가 인생속에서 겪어야 했던 많은 불운들은, 많은 이들의 동정을 불러 일으켰다. 그의 비밀스런 자연과의 연합은 저 우주너머에 있는, 고도의 신중함이 요구되는 자연과학이 제공하는, 무언가 다른 것을 추구하는 모든 사람들을 매료시켰다. 이들 모두는 마음속에 케플러를 향한 깊은 존경과 사랑을 간직하고 있다. 어떤 사람이든 한번 그의 주위를 감싸고 있는 신비스런 마법의 구안으로 들어가게 되면, 그것으로부터 빠져나올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 Max Casper, Kepler



Chapter 1. The Comet

1577년 출현한 혜성의 모습을 담은 목판화,
이것을 만든 목판화가는 혜성을 스케치하고 있는
자기모습을 그림의 중앙에 집어넣었다.


A.D. 1577년, 혜성 하나가 나타났다. 아마도 그 혜성은 인류역사에 있어 가장 눈부시게 빛났던 혜성 가운데 하나였을 것이다. 찬란하게 빛나는 혜성의 머리는 주위의 어떤 별보다도 밝게 빛났고, 그것의 꼬리는 보름달 크기의 50배에 가까운 길이로 밤 하늘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그 혜성은 이렇듯 신비롭게 하늘을 감싸면서 유럽 전역에서 수 많은 유럽인들 사이에 열광적인 관심과 열띤 토론을 불러 일으켰다. 남부 독일 깊숙한 곳에 위치한 뷔르탬버그(Wurttemberg)라는 도시에 사는 카타리나 케플러(Katharina Kepler)도 이 엄청난 광경을 보기 위하여, 다섯 살난 그녀의 아들, 요하네스(Johannes)를 데리고 레온버그(Leonberg) 마을이 한 눈에 내려다 보이는 언덕으로 향했다. 시력이 약하여 밤이면 모든 것이 더욱 흐릿하게 보였던 탓에, 이 놀라운 혜성의 장관은 어린 케플러에게 그다지 큰 인상을 남기진 못했다. 하지만 케플러는, 힘들고 불우하게 보내왔던 어린 시절 속에서, 그날 밤 보았던 엄마의 자상한 모습을 늘 기억하고 있었다. 이와 같은 시간, 저 멀리 북쪽 덴마크령의 한 작은 섬에서는, 어느 촉망받는 젊은 귀족 하나가 그 혜성을 자세히 관측하기 위하여, 그당시 세상에서 가장 규모가 큰 천문 관측소를 짓고 있었다.

하늘은 대부분의 경우 늘 한결같고, 평화로와 보인다. 이렇게 잠잠해 보이는 하늘에, 혜성은 아무런 경고도 없이 갑자기 출현한다. 그러하기에 혜성의 출현은 당시 유럽인들에게 무언가 좋지 않은 변화를 동반할 불길한 징조로서 받아들여졌다. 만일 이 징조의 크기나 밝기가 어떠한 사건의 심각성의 정도와 연관이 있다면, 지금 이 혜성이 암시하는 다가올 변화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큰 것일지도 모를 일이었다. 어쩌면 이것은 황제나, 터키의 술탄의 갑작스런 죽음, 혹은 심지어 임박한 그리스도의 재림을 예언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결국 이 혜성의 출현은 많은 사람들이 예상했던 것과는 다른 종류의 변화를 예고했던 것으로 드러났지만...
수천명의 구경꾼들이, 밤 하늘에 갑자기 출현하여 의미심장하게 빛나는 정체 불명의 천체를 멍하니 바라보며 겁에 질려있을 때, 이곳 저곳에서는 숙련된 천문학자들이, 이 불청객에 대하여 조심스럽고 정밀한 관측을 수행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들의 관측은 인간의 사고에 혁명적인 변화를 불러일으키는데 밑거름이 되었다. 바야흐로 과학 혁명의 새 날이 밝아오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때 엄마 손에 이끌려 언덕위에서 졸린 눈을 비벼가며 하품을 하고 있었던 그 어린 소년은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과학자중 한 사람이 될 것이었다.

요하네스 케플러는 1571년 12월 27일 오후 2시 30분, Weil der Stadt라 불리는 어느 작은 도시에 있는, 그의 할아버지 세발드(Sebald)의 작지만 아늑한 집에서 태어났다. 케플러는 그의 부모에게 첫째 아이였고, 아버지 하인리히(Heinrich)는 케플러가 태어날 때까지도 여전히 독립하지 못한채 그의 부모와 함께 살고 있었다. 케플러 가문은 한때 잘 나가던 상류층이었지만 이젠 몰락의 길로 들어서고 있었다. 수 세대전, A.D. 1433년에는 케플러의 고조할아버지의 증조부되시던 분이 군에 있을적에 황제 Sigismund에 의하여 그 용맹함을 인정받아 기사의 신분을 수여 받은 적이 있다. 하지만, 그 때 이후로 케플러가문은 점차 황제를 보필하는 일에서 멀어져갔고, 그들의 귀족성은 자연스럽게 상실되어져, 결국엔 제조업에 종사하는 평범한 중산층 계급이 되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집안 형편이 어려워짐에 따라 케플러가는 이 따분하고 자그마한 시골도시 Weil der Stadt로 이사올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케플러의 집안은 여전히 과거의 영광을 그리워하고 있었다. 그들은 여전히 선조로부터 대대로 내려오는 기사 갑옷을 간직하고 있었고, 케플러의 증조할아버지와 할아버지가 군에 있으면서, 황제 Charles V세와 그의 후계자들로부터 칭송받은 이야기들을 늘 자랑스러워 했다.

그들이 한때 누렸던 가문의 영광에는 비교할 수 는 없으나, 케플러 집안은 그래도 여전히 Weil der Stadt에서 어느 정도 존경받는 위치에 있었다. 홍조가 도는 살찐 얼굴에 멋드러진 턱수염을 기르고, 늘 단정하고 수려한 옷을 입었던 할아버지, Sebald는 케플러가 테어났을 때 이미 십년 째 그 도시의 시장을 역임해오고 있었다. 그가 시장에 당선되었다는 사실은, 특별히 케플러 가문이 그곳 Weil der Stadt에서 소수의 프로테스탄트 커뮤니티에 속해 있었던 점을 고려했을때, 그들 집안이 여전히 그 지역 사회에서 어느 정도 높은 위치에 있었다는 것을 반영해준다. 지도자로서 Sebald는 중재자라기 보다는 독재자의 이미지에 가까웠다. 그러나 그의 의견은 언제나 이성적이였고 믿을만 한 것이 었기 때문에 지역사회는 그를 지도자로서 신뢰했다. 어린 케플러는 엄하고, 쉽게 벌컥 화를 내는 성격의 할아버지 Sebald 밑에서 자주 맞고 자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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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uesday, April 7, 2009

한잔의 Coffee 안에는 ...



12 oz 컵을 기준으로 했을 때,

내린 커피 (Brewed Coffee) 5 calories 0 g fat
씽글샷 에스프레소 5 calories 0 g fat
라떼 (2% milk) 150 calories 50 g fat
카푸치노 (2% milk) 90 calories 30 g fat
바닐라 라테 (2% milk) 190 calories 45 g fat
카페모카 (2% milk) 200 calories 60 g fat
카라멜 마키야토 (2% milk) 180 calories 45 g fat

...이 들어있다고 한다. (자료 : 스타벅스 제공)

Thursday, April 2, 2009

갖고 싶은 차 - SoulSter

남자들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어릴 적에 프라모델 만들기에 빠져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나 또한 예외가 아니었는데, 나의 주된 관심분야는 "Automobile"이었다. 잘나가던 때는 자동차 프라모델 만들기뿐만이 아니라 각종 잡지나 신문 그리고 카탈로그에 있는 자동차 사진들을 모아서 각 모델들의 특징과 사양들을 몽땅 외워버린적도 있다. 그래서 그런가... 요즘도 한번 자동차를 보면 그 이미지가 머릿속에 각인되어 왠만하면 그 모델명을 잊어버리지 않는다.

이런 와중에, 어릴적 프라모델 만들때의 짙은 향수를 불러일으켜준 신차가 나왔다. 그것도 Kia 자동차에서! 모델명 쏘울스터라는 차는 굳이 종류를 구분하자면, 요즘 인기가 있는 박스형의 크로스오버 컴팩트 유틸리티 자동차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쏘울스터는 기아자동차가 올해 출시한 쏘울을 기반으로 디자인된 오픈형 컨셉카다. 때문에 디자인에서만 차이가 있을 뿐, 다른 성능과 사양에서는 쏘울 상용차량과 큰 차이가 없을듯 하다. 쏘울의 크기는 Scion xB보다 살짝 작고, 엔진 최고 출력도 142마력으로 xB의 158마력보다 살짝 떨어지지만, 보다 가벼운 무게로 디자인되어 동급의 박스형 모델중 가장 연비가 좋다고 한다. 어느 자동차 잡지에서 보니 쏘울의 연비가 최고 1갤런당 31.8 마일까지 나온다고... 현재 쏘울의 가격은 13,000불에서 17,000불 사이에 책정되어 있는데 쏘울스터는 얼마짜리 차로 나올런지 몹시 궁금하다.

무엇보다도 프라모델을 연상시키는 깔끔하고, 귀여운, 다른 어떤 박스형 모델과도 구별된 모습이 너무 마음에 든다. 조만간 상용차량이 나올텐데, 상용화된 차도 이 컨셉트 모델과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이었으면 좋겠다. 또 한가지 바램은... 쏘울스터에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모델이 추가되면 얼마나 좋을까... 갖고 싶다. 쏘울스터!

깔끔한 데쉬보드, 이 디자인 그대로 유지하렴~